Between Calm & Passion

실패를 두려워 않는 싱가포르의 창의교육

by 슈톡


싱가포르는 우리나라만큼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인재가 국가의 미래이자 경쟁력의 토대라는 판단 아래 세계 명문대학 유치에 앞장서는 등 교육 분야에 적극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싱가포르대 부설 수학ㆍ과학고등학교(NUSHS)는 이 같은 인재교육 정책의 정수(精髓)다.

지난 2005년 개교 이래 대학에 버금가는 다양한 연구 프로그램과 전문가 멘토링, 모듈형 커리큘럼 시스템을 채용해 수학ㆍ과학적 전문성과 창의적 역량을 겸비한 21세기형 창의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는 것.

특히 NUSHS는 모든 교육에 있어 결과보다는 주제에 대한 이해도와 기술력을 평가함으로써 학생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창의성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창이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안전한 좌석에서…." 도착을 알리는 기내 멘트에 새삼 귀가 번쩍 뜨였다. 창이국제공항이 마치 창의국제공항으로 들린 탓이다. 창이는 나무 이름이다. 과거 공항 인근에 창이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명칭이라는 것.

창이국제공항을 뒤로 한 채 30여분을 달리자 싱가포르 창의인재의 인큐베이터를 자청하는 싱가포르대 부설 NUSHS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학교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창의성이 싹틀 것만 같은 예술적 건물 디자인과 조경.

하지만 겉모습에 매료된 것도 잠시, 건물 내로 들어서자 곧바로 NUSHS의 진정한 경쟁력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수업이 끝난 시간이었지만 각 교실과 연구실에서 4~5명의 학생들이 모여 않아 무엇인가를 실험하고 토론하는 광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교내 곳곳에서 교사로부터 1대1 레슨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도 흔하게 보였다.

2005년 개교해 올해로 2회 졸업생을 배출한 새내기 학교가 이미 싱가포르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이자 창의인재 양성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NUSHS의 연구ㆍ혁신ㆍ경영 부문 책임자인 고혹롱 디렉터는 "NUSHS의 모든 교육은 창의리소스를 활용한 체험과 실험ㆍ토론ㆍ연구를 기반으로 한다"며 "과목별로 4~5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해 방과 후 연구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NUSHS 졸업생들이 웬만한 학사 이상의 과학ㆍ수학적 전문성과 연구능력, 혁신성, 창의적 역량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근원도 바로 이 같은 열정 때문"이라며 "MIT, 아이비리그, 런던대학(UCL), 임페리얼칼리지 등 해외 명문대 진학률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기초·고급·전문의 2-2-2 교육과정

NUSHS의 교육체계는 크게 기초ㆍ고급ㆍ전문으로 구성된 6년제 '2-2-2' 과정이다. 7학년 170명과 9학년 70명을 선발, 중ㆍ고등학교 과정을 3단계로 통합해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입학한 후 2년간은 수학ㆍ과학 관련 기초기술과 기반지식을 습득하고 3~4년차 때 이를 발전시켜 연구에 적용하며 5~6년차에 자신이 선택한 전공 분야의 특화연구에 나서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또한 각 학년별 커리큘럼은 대학처럼 학생들 스스로 수준에 맞춰 듣고 싶은 수업을 정해 수강하도록 돼 있다. NUSHS에서는 이를 모듈이라 부른다. 이 모듈은 다시 코어ㆍ선택ㆍ강화 3가지로 나뉜다.

코어모듈은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수업, 선택 및 강화모듈은 선택이 가능한 수업이다. 이 중 선택모듈은 코어모듈의 심화 과정, 강화모듈은 다방면의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전공과목 이외 영역의 수업들로 이뤄져 있다.

항김후 NUSHS 교장은 "NUSHS가 표방하는 인재상은 개척가ㆍ성취가ㆍ사고가ㆍ인도주의자"라며 "학년을 불문하고 전교육과정 근간에는 탐구정신과 창의성 배양이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척가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연구하는 인재, 성취가는 최고의 수월성을 발휘하는 인재를 말한다. 또 사고가는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인재, 인도주의자는 국가와 세계사회에 책임감을 가진 글로벌 리더를 의미한다.

특징적 사실은 전문성과 창의성에 더해 인간성, 즉 품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 교장은 "진정한 창의인재의 덕목은 발산적 사고력과 수월성, 그리고 사회공헌의 책임감"이라며 "별도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존경 받는 리더의 양성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NUSHS가 서류심사와 인터뷰에 더해 반드시 합숙캠프를 거쳐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도 무조건 똑똑하기만 한 학생이 아닌 열정과 인성,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두루 갖춘 인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실패로부터 발현되는 창의

이렇게 선발된 신입생들은 NUSHS의 모듈을 이수하며 점차 창의적 연구자로 거듭나게 된다. 9학년이 되는 3년차부터 독자적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졸업을 앞둔 5~6년차에는 최대 4개까지 선택할 수 있는 전공과목에 맞춰 심화연구 프로젝트를 완수한 후 그 결과를 논문으로 제출한다. 고 디렉터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1,000여명의 재학생들이 무려 200여건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학생들은 과목별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각종 국제올림피아드와 콘퍼런스ㆍ심포지엄ㆍ학술회의에도 참가하고 있다. 대학원생도 혀를 내두를 일정을 중ㆍ고등학생들이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물의 질은 놀라운 수준이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든 연구보고서가 국제사회생물학회ㆍ미국행동생태학회 등 국제학회에서 발표되기도 했을 정도. 학생들 역시 이를 힘겨워하기 보다는 즐기는 모습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항 교장은 실패를 질타하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첫번째 비법으로 꼽는다.

실제 NUSHS의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만큼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학생들은 결코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과물의 성패로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평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연구를 얼마나 잘 이해했고 연구과정에서 어떤 기술과 지식을 습득했는지가 평가의 핵심기준이다. NUSHS에서는 연구에 실패한 학생이 성공한 학생보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항 교장은 "평가자가 성패에 주목하면 학생들은 연구주제 및 방법을 정할 때 마음껏 창의성을 발산하기 어렵다"며 "성공의 압박에서 벗어나야만 연구 집중력과 도전정신도 극대화돼 혁신적 산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아직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국내 교육 풍토와는 극명하게 다른 모습임에 틀림없다.

멘토링 시스템과 연구몰입 환경

항 교장은 NUSHS만의 전문적 멘토링 시스템과 연구몰입 환경 또한 과학적ㆍ실천적 사고를 체득한 창의인재 육성에 큰 몫을 한다고 말한다.

먼저 멘토링은 2단계에 걸쳐 시스템화 돼 있다. 우선 각 교사들이 학생들의 멘토를 자처하며 학업ㆍ연구ㆍ진로 등 모든 부분에서 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현직 과학자, 학술원 회원, 연구소 연구원들을 멘토로 삼아 수학ㆍ과학 분야의 첨단기술과 트렌드를 배우며 연구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NUSHS는 학생 10명당 1명의 교사 비율을 유지, 1대1 멘토링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는 한편 싱가포르국립대, 싱가포르 과학센터, 국방과학연구소(DSTA), 과학연구청(ASTAR) 등 전문연구기관들과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다.

연구몰입 환경의 경우 모교 격인 싱가포르국립대의 연구시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의 연구열정을 자극한다. 다빈치 프로그램, 아인슈타인 프로그램 등 특별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도를 보인 학생에게는 대학생 수준의 연구교육도 제공된다.

지난달에는 아예 450만싱가포르달러를 투자, 최신 설비를 갖춘 6개 연구실을 자체 확보하기도 했다. 청정에너지ㆍ생명과학ㆍ항공역학ㆍ레이저ㆍ화학합성ㆍ화학분석 연구실이 그것이다. NUSHS는 이 연구실의 존재로 학생들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심화연구 프로젝트의 질적 향상과 그에 따른 창의인재 육성의 효율성이 배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NUSHS는 교사들에게 다각적인 자기개발과 연수기회도 제공한다. 수업의 대다수가 교과서나 상용교재보다는 교사들이 직접 개발한 창의리소스와 교수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항 교장은 "전체 교사의 55%가 석ㆍ박사 학위 소지자지만 교사의 창의성이 곧 학생 창의성의 기반이 되는 만큼 항상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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