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Calm & Passion

세계의 노동환경 - 아일랜드

by 슈톡

아일랜드에서 편지 한 장이 날아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블로거뉴스에 올리신 야근기사를 읽고 제 얘기를 좀 해볼까 해서 메일 드립니다.

전 20대 후반이고 서울 소재 대학교를 졸업한 여성입니다. 4학년 때인 2000년 12월에 큰회사 사내벤쳐였던 작은 회사에 UNIX C 개발자로 입사해서 2003년 하반기에 퇴사했습니다.

사내벤쳐 기업들이 대부분 다른 갑회사를 찾지 못하고 모회사의 용역으로 먹고 살지 않습니까? 제가 다니던 회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모회사는 전에 큰 공기업이었습니다.
 
2001년 중반부터 갑회사가 지정한 프로젝트 파트너와 함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2003년 중반까지 2년간 지방으로 떠돌았습니다. 
래도 프로젝트 초반에는 서울에 많이 있었지요. 가끔 대전 한번씩 가고, 갑회사에 들어가서 일도 좀 하고. 아침 9시에 출근하면 기본 밤 10시 퇴근. 저야 미혼이고 세상물정도 잘 몰라 갑회사가 저희 사장님한테 압력을 넣거나 말거나 돈을 떼어먹거나 말거나 신경 안썼지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약속 있으면 6시 반에 퇴근하고, 딴에는 공부 좀 해보겠다고 영어학원 끊고 살빼겠다고 운동 끊고 했습니다.
 
프로젝트 중반이 되니까 대중교통도 없는 이상한 시골로 이동하더군요. 나이 24살 먹은 처녀가 모텔을 매일 드나들었지요. 남들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피곤한 저로서는 남들 눈 따위는 걱정도 안되더군요. 삼시세끼 밖에서 먹고 그렇게 모텔에서 장기 투숙했습니다. 그때 살 많이 쪘습니다. 월요일 아침 7시에 짐을 잔뜩 꾸려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서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아침에 빨랫감 들고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15여명 같이 일했었는데 갑회사 사람들과 저를 제외한 사람들은 집에 한달에 한번 갈까 말까 하더군요. 그 회사 사람들은 아예 집을 세를 내어서 살았는데 전혀 부럽지 않아보였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부분은 1년 넘는 개발과 테스트를 반복한 결과 100% 성공률을 보여서 사실 그때부터는 사람들 일하는거 구경하고 중간 중간 장비에서 올라오는 값 확인해주고 테스트해주는 정도였습니다. 파트너 회사의 제품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쪽 사람들이 많이 바뻤지요. 물론 그사람들이 바쁘면 저도 덩달아 빠빴지만요.
 
그러다 프로젝트 후반이 되어서는 잠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 와중에 갑회사에 새로운 담당자가 왔는데, 문제는 이분이 시골 지사에서 일하다 오신분이라 저희 시스템은 문서로 읽어본거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갑회사 담당자라고 첫날부터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더니 나중엔 오전에 뭐 이렇게 바꿔달라고 얘기하고 오후에는 프로젝트 전혀 관계없는 딴 사람들 얘기 듣고 와서 또 저렇게 바꾸어 달라고 하고 그러더군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갑회사니까 그냥 비위를 맞추라고 하더군요. 아! 정말 어이없어서 짜증+울음이 울컥했습니다. 결국은 바꾸다 바꾸다 원점으로 되돌아 갔어요.

서울에서 한달이나 있었나. 그 다음에는 이 갑회사가 모공기업에 입찰을 들어가면서 저희는 더 이상한 시골로 이동했습니다. 이제는 기차도 없고 고속버스로 이동해서는 모텔에서 현장까지는 택시 아니면 누군가가 승용차로 이동시켜야 했지요. 불안정한 시스템을 어떻게 해서든지 통과시켜보겠다고 아침 6시에 일 시작해서는 새벽 2시에 끝나기를 몇 달간 했습니다.

 
아일랜드걸님의 아일랜드 집

제가 이렇게 고생하는걸 보신 부모님이 하루는 저한테 진지하게 회사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저희 부모님 고생 많이 하시고 힘들게 돈 버신 분들입니다. 회사 그만두라는 얘기 절대 쉽게 하실 분들 아니지요.
 
결국은 2003년 중반 성능테스트에서 실패했습니다. 테스트와 관련해서 잡음이 많았습니다. 경쟁사간에 반대작전이 펼쳐지고 두 곳은 결국 법원까지 갔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더러운 현장이었지요. 그래서 재테스트를 할지 모른다는 소리가 흘러나오더군요. 그 와중에 갑회사 담당자였던 분이 저한테 묻더군요 'XX씨는 차라리 이거 재테스트 안했으면 좋겠지요?' 철없던 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라고 대답을 했고 그 때 같이 있던 다른 회사 사람들 표정이 아주 볼만했었지요.
 
그리고나서 서울로 올라오니 갑회사의 다른 프로젝트로 절 보내더군요. 말도 안되게 짧은 프로젝트 기간에 용역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사람 적게 쓰고. 중간관리자였던 분한테 사람 부족하다고 몇번을 이야기해도 묵묵부답. 아침 9시 출근해서 저녁 10시 퇴근. 연봉은 첫 해에 1800만원 둘째 해에 1900만원 셋째 해에 2100만원.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할 때가 대부분이고 심할 때는 일주일에 100시간도 넘게 일했는데.
 
그 마지막 프로젝트 할 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부모님 앞에서 거실을 온몸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대성통곡 했습니다. 이런 모습 보이면서 울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잖아요? 부모님께 퇴사하고 아일랜드로 어학연수가겠다고 하니 부모님 크게 반대 못하시더군요. 퇴사하겠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리는데 그동안 화났던 점 짜증났던 점 얘기하다보니 제 감정에 제가 서러워서 또 울어버렸습니다.
 
퇴사후 아일랜드 와서 어학연수하면서 직장도 잡았습니다. 워킹비자받아서 지금은 웹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다섯 시 반에 퇴근합니다. 한 시간 점심시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퇴근후 집에 도착하면 집 앞 골목에서 아이들과 공차면서 놀고 있는 아빠들을 많이 봅니다. 한국에서 한번도 못봤던 모습이지요. 주말이면 엄마아빠와 아기들이 유모차 타고 혹은 아장 아장 걸으면서 바닷가 산책하는 모습 많이 봅니다. 나이든 노부부가 손잡고 다니십니다.
이 모습들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돌아갑니다. 사실은 한국에 돌아가기가 두려워서 이곳에 있기를 결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그렇게 치열하게 살 용기가 없어서 못 돌아갑니다.
 
퇴근후 간단히 저녁 먹고 날씨가 좋으면 바닷가로 산책 나가고 자전거 타고 동네한바퀴 돌고, 주말이면 산에도 가고 바닷가 산책, 쇼핑도 가고, 동료 혹은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공휴일이 낀 주말이면 가까운 외국으로 나가기도 하고.
 
한국보다는 모든게 느리고 낙후되어 있지만 적어도 '살고 있다'라는 행복한 마음이 있습니다. 혼자라서 가족이 그립고 가끔은 외로워서 울기도 하지만 행복합니다. 

 

인터뷰

처음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할 때 주변에서 싫은 내색이나 소리를 하진 않던가요.
같은 회사 동료분들 다들 쿨~했습니다. 다만 타 회사 프로젝트에 들어가니까 갑회사의 담당자가 밤 12시까지 퇴근 못하게 하더군요. '의리'라는 거지요. 제가 담당했던 부분은 개발이 끝나서 할 일도 더 없는데 다른 부분 쪽 개발하시던 분들이 퇴근 못하고 있으니까 같이 기다리라는 거였습니다. 되려 그쪽 회사분들이 저한테 많이 미안해 하셨지요.

 
프로젝트 파트너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희 회사는 갑회사와 프로젝트 파트너가 선정된 후에 갑회사 쪽에서 발주한 서버프로그램 개발로 나중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 파트너 회사가 2년 테스트 기간동안 발생된 경비의 대부분을 결제 했었습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가서는 갑회사 담당자의 숙박비는 물론 식사와 회식 비용까지 결제하더군요. 파트너 회사가 프로젝트 기간동안 발생비용 거의 모두를 처리했습니다. 저희 회사도 2차에 걸친 그 프로젝트에서 돈 얼마 못 받은 걸로 알고있습니다. 이 프로젝트 때문에 개발자 한명을 상주시키느라 일 못시키고 제 숙박비에 출장비 매일 나가고.

 
시골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가 무엇이지요. 업무효율 또는 보안 때문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프로젝트 특성상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퇴직하겠다며 우실 때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2년 넘게 고생하는걸 보셨던지라  퇴직하고서는 좀 쉬면서 좋은 직장 알아보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그렇지만 외국으로 나가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셨는데 괜찮은 회사들은 다 영어성적표 제출해야한다고 말씀드리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아일랜드는 가게된 과정 얘기 해주십시오.
서울소재 4년제 대학 컴퓨터공학 전공. 나쁘지 않은 성적. 개발자로 근무 3년.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하는 회사들은 모두 영어성적표 제출을 의무화하더군요. 솔직히 개발자는 기술문서나 책 읽을 정도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기업에서는 어이없게도 토익성적표를 '신봉'하더군요. 그래서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는데. 캐나다, 영국, 호주는 한국인이 많아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 유혹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영어실력을 올리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실업자'니 비자가 나올리 없고요. 영어권에서 한국인이 적은 곳을 찾다보니 아일랜드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곳과 한국의 일하는 방식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아일랜드가 선진적이라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 곳의 프로그램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제껏 야근 딱 두 번 해봤습니다. 물론 프로젝트 일정상 필요한 야근이었습니다. 첫번 야근은 사장이 금요일에 일찍 오후 두 시 퇴근하는 걸 조건으로 부탁했던거고, 두번째 야근은 금요일 휴무를 약속받고 했습니다. PM과 프로젝트 분석을 한 후 개발일정을 산출하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이 나오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일하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필요한 경우 야근을 하되 보상받습니다.
 
선진적인 부분은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Full time으로 일하면 법적으로 일년에 4주 paid holiday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4주보다는 더 줍니다. 근무시간은 보통 점심시간을 제외한 7시간이나 7시간반 주 5일 근무입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의 건물은 주말에는 건물이 잠기고 평일에는 오후 8시가 되면 잠깁니다.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 건물 보안쪽에 요청을 해서 잠기는 시간을 최대 10시까지 늦출 수 있는데, 보안쪽에서 무척 싫어하더군요. 왜 늦게까지 일하냐고.
 
한주 최대 근무시간 37.5시간 입니다. 년초에 'Work Balance Week'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Work와 Life의 균형을 갖자는 것이지요. 혹시 우리나라 공익광고에서 이와 비슷한 광고 보신 적 있으십니까? 한국은 Work와 Life가 완벽한 비균형 상태이지요. 저도 그랬고 제 부모님도 그랬고 제 형제들도 비균형 상태입니다.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디 피곤해서 가족들과 따뜻한 말 한마디 하겠습니까? 제가 항상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일은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는 겁니다. 여기서 풍요롭다는건 금전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갖고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서 기뻐한다는 것이 더 강조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직장생활 하면서 꾸준한 자기개발을 위해서 시간 및 금전적 투자를 많이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자기개발에 조금 게으른 듯 합니다. 한국처럼 퇴근 후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잘 안되어 있고 주변 동료들 중에 따로 공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동료들의 업무지식 수준이 한국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에 비해서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만 짜면 되지 왜 서버 운영까지 알아야해?”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할줄 알면 되는거지 왜 리눅스 시스템의 파일 권한까지 알아야해?” 라고 말하면 할말 없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거라서 가끔은 지금 동료들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냥 제가 한국인 특유의 다재다능에 집착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프로그램 수준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프로그램 수준 높은지 몰랐고 현재도 수준이 높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듯합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출신 프로그래머는 얼마나 됩니까. 그외 한국교포는 어느 정도 됩니까. 한국사람들과 교류는 있습니까. 
한국이민가정, 한국-아이리쉬 가정, 한국 어학연수생들이 각자의 그룹내에서 교류가 활발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더블린 내 어느 영어학원을 가도 한국학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덕분에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면 한국말을 종종 들을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국인 프로그래머는 한명도 없고 다만 시스템관리 쪽에 한 분있다고는 얘기 들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EU 비자 면제 때문에 폴란드 프로그래머들이 아주 많습니다. 폴란드의 IT수준 상당히 높습니다. 한국이 한국 IT 수준 높다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모르듯이 폴란드도 IT 수준 상당히 높지만 다만 알려져 있지 않을뿐입니다.
 
혹시 IT쪽으로 해외 취업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강력하게 아일랜드 추천하고 싶습니다. 컴퓨터 관련 학위가 있으면 비자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는 쉽게 취업이 가능합니다. 또한 아일랜드 자체의 인력이 많이 부족해서 외국인에게 상당히 개방적이고 IT쪽은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날씨에 민감하신 분들은 살기가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비가 온지 연속 43일째입니다.
 


아일랜드걸님 집앞의 오후 풍경 
 
아일랜드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아일랜드 어느 지역이지요. 그곳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사는 모습도
제가 사는 곳은 수도인 더블린에서 가까운 타운이고요 직장은 더블린에 있습니다. 여느 나라의 수도와 마찬가지로 더블린 역시 사람 많고 바쁩니다. EU 회원국민들은 비자나 워크퍼밋없이 취업 및 체류가 가능한 덕에 동유럽 뿐만 아니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사람도 많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쪽 사람도 많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외국인, 아이리쉬 구분하는게 의미가 없어지는 듯합니다.
 
제가 아일랜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신적인 여유로움이 아닐까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두 딸을 데리고 오는 아빠를 매일 아침 봅니다. 작은 딸은 이웃에 맞기고 큰딸은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줍니다. 작은 딸 이웃에 던져놓고만 가는 게 아니라 아이 봐주는 아주머니와 항상 10여분씩 얘기를 하더군요.
 
제 동료는 점심시간이면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서 아이와 함께 집에 가서 점심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옵니다. 퇴근길에는 날씨가 좋은면 동네 풀밭에서 아이들이 친구들끼리 혹은 아빠와 함께 공을 차면서 놀고있습니다. 아들만 셋인 옆집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저녁때 외출하면 집 앞에 서는 아이스크림차에서 소프트콘을 네 개를 삽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옆집 가족들의 머리가 담장위로 불쑥불쑥 튀어나와(트렘폴린에서 뛰느라고) 저를 놀래킵니다. 이 모두 제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입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바닷가의 주차장은 아침 일찍부터 꽉 차고 유모차와 아이들 자전거, 주인과 산책나온 개들 다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도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유모차를 미는 젊은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를 쉽게 볼 수있습니다. 버스에 유모차가 오르려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양보하고 버스 기사는 유모차가 오르기 쉽도록 입구 쪽에 설치면 경사면을 내립니다. 물론 휠체어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1/10인 이곳. 과연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이 많아서 였을까요? 이곳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멸시하거나 조롱거리로 삼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버스 좌석에 앉아있어도 그 누구도 거리낌 없이 그 사람의 옆에 앉습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정신적인' 수준을 끌여 올려야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곳을 가도 초록색 잔듸밭과 나무들이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의 비지니스파크 - 가산디지털센터 같은-는 다르게 이곳의 비지니스파크는 잔듸와 나무들로 가득합니다. 점심 식사 후 나무 숲을 거닐며 소화도 시키고 인공조명대신 진짜 태양을 쬐며 사람도 나무도 광합성을 합니다.  
 
한국에서 1년에 휴가 딱 5일이었습니다. 월차 없었습니다. 지금 21일입니다.  21일이면 4주하고 하루 더 이지요. 매년 한국에 2-3주씩 다녀오고도 주말과 공휴일을 잘 이용해서 한 두 차례씩 가까운 외국으로 여행갑니다. 올해는 한국에 3주 다녀왔고 10월에 스페인으로 휴가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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